데드 스페이스: 사골도 잘 끓이면 맛있다
아직도 꽤 맛있다.

좀비.
참 오래도 우려먹었다.
죽은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산 사람을 물어뜯는다는 간단명료한 아이디어 하나로 영화도 만들고, 드라마도 만들고, 게임도 만들었다. 이제는 길바닥에 멀쩡한 시체가 누워 있어도 슬퍼하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
저거 일어나겠네.
외계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깊고 어두운 우주. 연락이 끊긴 우주선. 구조 신호를 받고 들어간 주인공.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고 승무원들은 전부 사라졌는데 환풍구에서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린다.
네, 압니다.
뭐가 나올지 우리 모두 압니다.
그런데 《데드 스페이스》는 이 두 종류의 사골을 한 솥에 넣어버렸다.
좀비와 외계인.
거기에 우주판 사이비 종교를 한 숟갈 넣고, 거대한 채굴선 하나를 준비한 다음, 인간의 시체를 아주 불경스럽게 재조립해서 환풍구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맛있었다.
《데드 스페이스》는 완전히 새로운 재료를 발명한 게임은 아니다.
오히려 어디선가 한 번쯤 먹어본 것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재료를 섞는 방법이 달랐다.
그 결과 좀비도 아니고, 에이리언도 아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데드 스페이스'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맛이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그 오래된 사골을 도대체 어떻게 끓였길래 아직도 맛있는지 한번 뜯어보려고 한다.
Dead Space란?
《데드 스페이스》는 엔지니어 아이작 클라크가 연락이 두절된 거대 행성 채굴선 USG 이시무라에 진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다.
아이작이 이시무라에 온 이유는 괴물을 때려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배가 고장 났으니 고치러 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당연히 고장 난 기계만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승무원 대부분이 사라진 이시무라호에는 인간의 시체가 기괴하게 변형된 '네크로모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플레이어는 제한된 탄약과 자원을 관리하면서 배 곳곳을 돌아다니고, 고장 난 시스템을 수리하고, 네크로모프를 상대하며 사건의 진상을 알아가게 된다.
이번에 플레이한 작품은 2008년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리메이크판이다.
기본적인 이야기와 게임의 핵심은 원작을 유지하지만, 전투와 그래픽뿐 아니라 이시무라호의 공간 구조까지 크게 손을 봤다.
그리고 이 게임의 차별점은 첫 번째 네크로모프를 만나는 순간부터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잘한 점
1. 머리를 쏘지 마세요
좀비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봤다면 우리에게는 이미 훌륭한 생활 습관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좀비가 보인다.
머리를 조준한다.
쏜다.
끝.
좀비물에서 헤드샷은 거의 장르의 상식이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도 어째서인지 머리를 날려버리면 다시 얌전한 시체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시무라에서는 벽에 피로 적힌 아주 친절한 안내문 하나가 우리를 맞이한다.
CUT OFF THEIR LIMBS.
팔다리를 잘라라.
처음에는 좀 이상하다.
눈앞에 있는 놈은 누가 봐도 좀비처럼 생겼다. 사람 시체가 기괴하게 뒤틀린 채 달려오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머리를 날려버리고 싶어진다.
문제는 머리를 날려도 잘만 달려온다는 것이다.
네크로모프에게 인간의 신체 상식은 별 의미가 없다.
머리를 없애도 팔이 남아 있으면 휘두르고, 다리가 남아 있으면 달려든다.
그래서 《데드 스페이스》의 전투는 적의 체력바를 깎는 싸움이라기보다 상대를 효율적으로 분해하는 작업에 가까워진다.
- 빠르게 접근하는 적이라면 다리를 먼저 자른다.
- 공격 수단이 위협적이라면 팔을 날린다.
- 여러 마리가 몰려온다면 움직임을 제한한 뒤 하나씩 해체한다.
이 단순한 변화 하나가 게임의 손맛을 크게 바꾼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좀비물의 문법을 역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네크로모프는 인간의 시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좀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몸이 움직이는 방식은 더 이상 인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말하자면,
겉모습은 좀비인데 작동 방식은 외계인이다.
그리고 게임은 이 사실을 설정집 몇 페이지를 읽게 해서 알려주는 대신, 머리에 총알을 박았는데도 그 자식이 계속 달려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플레이어에게 직접 교육한다.
매우 효과적인 교육법이다.
죽을 수도 있다는 점만 빼면.
2. 우주에서는 공구로 사람을 자릅니다
그렇다면 네크로모프의 팔다리를 뭘로 자를까?
괴물이 득실거리는 우주선이니 멋진 돌격소총이나 산탄총 한 자루쯤 받을 것 같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아이작은 군인이 아니다.
엔지니어다.
이시무라에 괴물을 사냥하러 온 것도 아니고, 고장 난 우주선을 수리하러 왔다.
그래서 아이작의 손에 처음 들어오는 대표적인 무기는 총이 아니라 플라즈마 커터다.
원래는 산업현장에서 물건을 절단하는 공구다.
그런데 놀랍게도 네크로모프도 잘 자른다.
이후에 얻는 장비들도 비슷하다.
- 광물을 자르는 장비.
- 강력한 공업용 절단 장비.
- 원형 톱날을 돌리는 장비.
아무튼 사람 잡으라고 만든 물건은 아닌데 사람의 시체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잡는 데 아주 탁월하다.
이시무라호 산업안전 담당자가 이 광경을 봤다면 네크로모프보다 아이작부터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공구 활용은 단순히 웃긴 설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데드 스페이스》의 세계와 전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네크로모프는 인간의 육체를 분해하고 다른 목적으로 재조립한 존재다.
팔은 칼날이 되고, 몸은 찢어지고, 인간에게 필요했던 신체 구조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된다.
그걸 상대하는 아이작은 광물과 기계를 절단하던 공구를 이용해 그 몸을 다시 해체한다.
인간을 재조립해서 만든 괴물을 산업용 공구로 다시 분해한다.
상당히 이상한 싸움이다.
그런데 이 이상함 덕분에 《데드 스페이스》는 다른 좀비 게임이나 외계인 게임과 확실하게 구분된다.
주인공이 특수부대원이 아니라 엔지니어라는 설정, 사지 절단이라는 전투 시스템, 산업용 공구라는 무기 디자인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붙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이 게임의 무대가 전함이나 비밀 연구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는 광산이다.
다만 행성을 통째로 뜯어먹을 정도로 큰 광산일 뿐이다.
3. 네크로모프보다 이시무라호가 무섭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에서 거대한 우주선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이시무라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멋진 SF 우주선과 조금 다르다.
목적부터 낭만적이지 않다.
돌 캐러 왔다.
조금 정확하게 표현하면 행성의 일부를 통째로 뜯어 우주로 들어 올린 뒤 자원을 채굴한다.
그러다 보니 이시무라호 내부 역시 세련된 미래 도시보다는 우주에 거대한 공장 하나를 띄워놓은 것에 가깝다.
벽에는 파이프와 기계가 가득하고, 각종 산업시설과 의료구역, 승무원 숙소, 기관실 등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구조가 공포게임과 아주 잘 어울린다.
- 환풍구는 사방에 뚫려 있다.
- 기계에서는 계속 이상한 소리가 난다.
-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 불은 깜빡인다.
- 멀리서 무언가 금속을 긁는 소리도 들린다.
문제는 그것이 그냥 기계 돌아가는 소리인지, 네크로모프가 기어 다니는 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적이 나타났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보인다.
쏜다.
자른다.
끝.
진짜 문제는 아무것도 없을 때다.
멀리서 '쿵' 소리가 났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앞에는 환풍구가 있고, 뒤에는 방금 지나온 복도가 있다.
바닥에는 누가 봐도 수상한 시체가 하나 누워 있다.
이때부터 게임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 등장한다.
플레이어의 상상력이다.
《데드 스페이스》는 굳이 매번 괴물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조명을 몇 번 깜빡이고 환풍구에서 소리 하나 내주면 나머지는 플레이어가 알아서 한다.
방금 뭐였지?
뒤에서 오는 거 아니야?
저 시체 일어나는 거 아니야?
그러다 보면 게임이 놀래키기도 전에 알아서 놀라게 된다.
리메이크에서는 여기에 공간 구조의 변화도 더해졌다.
원작이 챕터별로 구분된 선형적인 진행에 가까웠다면 리메이크에서는 이시무라의 여러 구역이 하나의 연결된 공간처럼 구성되어 있다.
트램을 이용해 이전 구역으로 돌아갈 수 있고, 게임을 진행하며 보안 등급이 높아지면 과거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방을 다시 찾아가 열어볼 수도 있다.
덕분에 이시무라호가 단순한 '스테이지 모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의 거대한 배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의료구역.
다음에는 기관실.
그다음에는 채굴구역.
이렇게 맵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시무라호의 어느 부분에 있는가'라는 감각이 생긴다.
나는 이 부분을 리메이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이시무라호가 스테이지에서 장소가 됐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장소가 되었다는 것은,
다시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쉬운 점
1. 이제 안 무섭습니다
아무리 기괴하게 생긴 괴물도 백 번 보면 익숙해진다.
처음 네크로모프를 만났을 때는 환풍구만 흔들려도 총을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다르다.
아, 슬래셔.
다리 자르고.
팔 자르고.
다음.
처음에는 네크로모프가 아이작을 사냥하는 게임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아이작이 네크로모프를 해체하는 게임으로 변한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장비가 강화되고 무기도 늘어난다.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성장한다.
어떤 적에게 어떤 무기가 좋은지 알게 되고, 어디를 먼저 잘라야 하는지 익숙해진다.
스테이시스와 키네시스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알게 되면 아이작은 더 이상 공구 하나 들고 벌벌 떠는 출장기사가 아니다.
이시무라호 최고의 네크로모프 처리 전문가다.
공포게임으로서는 분명한 약점이다.
괴물이 익숙해지는 순간 공포는 줄어든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데드 스페이스》의 장점과 정확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투가 재미있기 때문에 네크로모프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배우기 때문에 능숙해진다.
능숙해지기 때문에 무섭지 않다.
게임의 좋은 전투 시스템이 장기적으로는 공포를 조금씩 갉아먹는 셈이다.
그래서 후반부의 《데드 스페이스》는 초반보다 액션 게임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변화가 완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작이 이시무라에 적응하는 동안 플레이어 역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처음 이시무라에 발을 들였을 때의 막막함과 공포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 아쉽다.
2. 이시무라 관광 2회차, 3회차
리메이크가 이시무라호를 하나의 연결된 공간으로 만든 것은 분명 좋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 넓어진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보안 등급이 올라가고, 이전에는 열지 못했던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아까 의료구역에 못 열었던 문 있었는데.
트램을 탄다.
의료구역으로 간다.
전에 지나갔던 복도를 걷는다.
네크로모프가 또 나온다.
문을 연다.
탄약이랑 아이템을 챙긴다.
다시 돌아간다.
몇 번 반복하다 보면 탐험이라기보다,
놓고 온 택배 찾으러 가는 기분이 든다.
메트로배니아 스타일의 탐험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면서 과거의 공간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갈 수 없었던 길이 열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로 연결되면서 세계에 대한 이해 자체가 확장된다.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에도 이런 요소가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보상은 잠겨 있던 방을 다시 찾아가 아이템을 챙기는 수준에 머문다.
그러다 보니 이시무라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는 장점에 비해 실제로 얻는 탐험의 쾌감은 조금 부족하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공포와 백트래킹은 궁합이 썩 좋지 않다.
처음 의료구역에 들어갔을 때는 무섭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번째 방문쯤 되면 다르다.
여기 지나면 엘리베이터 나오고, 오른쪽에 상점 있고, 저쪽 환풍구에서 전에 한 놈 나왔고.
어느 순간 이시무라호 주민이 된다.
공간을 실제 장소처럼 느끼게 만들어주는 반복 방문이, 역설적으로 그 공간이 가진 미지의 공포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리메이크의 공간 구조는 이시무라를 훨씬 설득력 있는 장소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게임으로서 항상 더 재미있는 구조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조금 망설이게 된다.
3. 우주 최강 출장기사 아이작 클라크
그리고 아이작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너무 유능하다.
이시무라호에서 뭔가 고장 나면 일단 아이작을 부르면 된다.
전력이 끊겼다.
아이작.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
아이작.
통신이 안 된다.
아이작.
산소 공급에 이상이 있다.
아이작.
어딘가에 거대한 괴물이 있다.
그것도 아이작.
게임 진행 구조가 기본적으로 이시무라호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방식이다 보니 비슷한 흐름이 계속 반복된다.
A가 고장 났다.
A를 고치려면 B가 필요하다.
B를 가지러 갔더니 C에 문제가 생겼다.
C를 해결하면서 네크로모프를 잡는다.
B를 얻는다.
A를 고친다.
아이작, 큰일 났어. 이번에는 D가 고장 났어.
이쯤 되면 네크로모프 사태보다 이시무라호 정비팀의 인력 부족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런 구조는 게임의 설정과 잘 맞는다.
아이작은 엔지니어이고, 망가진 우주선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하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백트래킹과 결합되면서 플레이 피로도가 생긴다.
같은 공간을 다시 지나가고, 또 다른 시스템을 고치고, 그 사이에 네크로모프가 다시 나타난다.
결국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가 가진 공간적 장점은 여기에서도 양날의 검이 된다.
이시무라호가 하나의 거대한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몰입감은 좋아졌다.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계속 출근해야 한다.
스토리와 세계관: 우주에 가서도 인간은 사이비에 빠집니다
스포일러 안내
이 부분부터는 스토리에 대한 가벼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드 스페이스》가 단순히 '우주 좀비 게임'에서 끝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마커와 유니톨로지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문제는 단순해 보인다.
괴물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죽었다.
살아서 탈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시무라호를 돌아다니며 기록과 사건을 확인하다 보면 네크로모프 사태 뒤에 인간의 믿음과 집착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특히 유니톨로지가 흥미롭다.
언뜻 보면 그냥 전형적인 우주 사이비 종교처럼 보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물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죽음 이후의 합일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끔찍한 행동까지 벌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마커는 진짜다.
아무 힘도 없는 돌덩이에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서로 죽이는 이야기였다면 광신이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커는 실제로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주고, 환각을 일으키고, 죽은 육체를 전혀 다른 무언가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질문이 조금 복잡해진다.
실제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힘이 눈앞에 존재한다면,
그것을 신성하다고 믿는 것은 단순한 광신일까?
아니면 아직 설명하지 못한 현상을 해석하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일까?
물론 유니톨로지가 벌인 짓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이 사람들은 여러 의미로 너무 멀리 갔다.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의 재미는 단순히 "사이비가 사고 쳤습니다"로 끝나지 않는 데 있다.
인간이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해하려 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결국 자신들이 만든 의미에 잡아먹힌다.
그리고 이 구조는 아이작과 니콜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된다.
아이작 역시 니콜이라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이시무라에 들어왔고, 게임이 진행될수록 자신이 보고 싶은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의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데드 스페이스》에서 마커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던 믿음과 욕망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네크로모프는 인간의 몸을 뒤틀어놓는다.
마커는 인간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을 뒤틀어놓는다.
어쩌면 둘 중 더 무서운 쪽은 후자인지도 모르겠다.
추천 대상
- 서바이벌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
- SF와 바디 호러를 좋아하는 사람
- 자원 관리와 탐색을 즐기는 사람
- 단순히 총을 쏘는 것보다 독특한 전투 시스템을 원하는 사람
- 폐쇄된 공간을 돌아다니며 세계관과 사건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비추천 대상
- 고어 표현에 거부감이 강한 사람
- 같은 공간을 반복해서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 빠른 진행과 끊임없는 액션을 원하는 사람
- 길 찾기와 아이템 탐색을 귀찮게 느끼는 사람
- 공포게임인데 끝까지 계속 무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결론: 사골도 잘 끓이면 맛있다
《데드 스페이스》에는 의외로 완전히 새로운 재료가 많지 않다.
죽은 인간이 괴물이 된다.
우주선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나타난다.
광신적인 종교집단이 사고를 친다.
주인공은 연락이 끊긴 우주선에 들어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정말 익숙하다.
그런데 《데드 스페이스》는 이 익숙한 요소들이 서로 맞물리게 만들었다.
- 인간의 시체가 외계 생명체처럼 변형되기 때문에 사지를 절단해야 한다.
- 사지를 절단해야 하기 때문에 산업용 절단 공구가 무기가 된다.
- 산업용 공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군인이 아니라 엔지니어다.
- 엔지니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무대는 군함이 아니라 거대한 채굴선이다.
- 그 채굴선의 환풍구와 기계 시설은 네크로모프가 숨어다니기에 완벽한 환경이 된다.
그 결과 이시무라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포 장치가 된다.
나는 이 연결이 《데드 스페이스》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 장점들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단점으로 뒤집힌다.
- 네크로모프를 상대하는 방법을 배우면 전투는 재미있어지지만 괴물은 덜 무서워진다.
- 이시무라호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면 실제 장소처럼 느껴지지만 미지의 공간은 줄어든다.
- 아이작과 플레이어가 능숙해질수록 생존 호러 특유의 무력감도 사라진다.
그래서 《데드 스페이스》는 완벽한 공포게임은 아니다.
후반부에는 반복되는 전투와 이동에 피로가 생기고, 이시무라호도 처음만큼 무섭지 않다.
리메이크에서 추가된 연결형 맵 구조 역시 탐험의 재미와 백트래킹의 피로를 동시에 가져왔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아직까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좀비도 새롭지 않았다.
외계인도 새롭지 않았다.
버려진 우주선도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었다.
조리법이었다.
《데드 스페이스》는 너무 오래 우려서 이제 아무 맛도 안 날 것 같은 두 종류의 사골을 한 솥에 넣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끓여냈다.
그리고 적어도 내 입맛에는,
아직도 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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